후회한 것?

  그런 건, 얼마든지 있다.


  그 때, 그렇게 했다면. 그 때, 이렇게 했다면.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좀 더 선택지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나 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무언가 다른 것을 선택했다면, 상응하는 다른 미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사고의 늪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고민하더라도, 과거를 바꾸는 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며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더스틴은 아니지만, 자신이 선택한 것에는 책임을 가져야만 하고.

  뭐,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더스틴이든 나든, 과거에 했던 선택이 속박이 되어 지금까지도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는 것이다.

  더스틴은 과거에 선택했던 길을 한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것이 어떤 가시밭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 녀석의 마음을 한없이 피폐하게 만들더라도, 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그 길에서 헛디딘 적이 없다는 점이, 그 녀석의 대단함이다.

  정신력이라는 부문에서는, 나 따위보다 훨씬 그 남자 쪽이 뛰어나다.

  저 놈은 신은 아니지만, 그런 점에 있어서는 신조차 이겨버리는 괴물 녀석이다.


  내 선택?

  나는 선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무 것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언제나 어중간하고, 무엇을 하든지 결과를 남기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리고 지금도 역시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유일하게 한 것이 있다면, D에게 울며 매달린 것 뿐이었다.

  한심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D에게 울며 매달린 것조차도, 나에게는 옳았던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모양이다.

  좀 더 다른 방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D가 선의에서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라도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연락이 되지 않게 되어버린 시점에서 확신했을 정도이다.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늦어버렸던 거겠지.


  D의 목적이 대체 무엇인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본인 왈, 재미있어 보이니까, 라고 하는 것도 의심할 것 없는 본심인 것이겠지만, 그 이외에도 목적이 몇 개인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중 하나가, 예상이기는 하지만 실험이겠지.

  지구에는 충독[1] 같은 것이 있다고 들었다.

  그것과 같았다.

  시스템은 거대한 충독이다.

  그곳에 사는 생물들을 서로 죽이는 것으로, 보다 더 강한 생물을 낳기 위한 장치.

  최종적인 목표는, 신.

  일곱 대죄나 일곱 미덕의 스킬에 「신에 이르는 같은 설명문이 있는 시점에서, 그 점은 명백하다.

  시스템은 인공적으로 신을 낳기 위한 실험 장치였던 것이다.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거야말로 재미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시스템은 그 이외에도, 군데군데 D의 반 장난으로 생각되는 기능이 몇몇 개 보인다.

  그 전부에 합리적인 답변을 찾는 것은, 난 하지 못한다.

  그거야말로 D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듣는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될지 안 될지도 알 수 없는데 말이지.

  저 분은 그런 분이시다.

  이해하면 지는 것이다.


  그랬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에게는 무엇이 D의 진심을 울리는 것인지, 정말로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고.

  내가 멋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D의 비위를 거스르면.

  그렇게 생각해서, 시키는 것을 조용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도 나는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D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재미있다고 여겨질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도 가능할 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나라고?

  이 내가, 그 D에게, 재미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거냐?

  내가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한 번의 시도로 이것이고 저것이고 완전히 무너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나에게는 한 발 내딛을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별이 D의 장난감이 되어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했지만, 장난감이 되고 있어도, 그 분 덕분에 살아나게 된 것도 또한 사실.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당시의 내 선택이 옳았던 것인가 어땠던 것인가 고민할 참이긴 하지만, 별로 방법은 없었고, 최선이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이다.

  그러네, 만약 내가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들, 그렇더라도 D에게 기대게 되었겠지.

  후,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나는 이런 미래 밖에 고를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이거든 저거든 고민한 끝에, 선택을 할 타이밍을 놓치는 모습이 우리의 일이지만 눈에 선하다.

  '헤타레[2]'라고 불려버리는 것도 납득한다.


  후우….

  아아, 그래.

  나는 언제나 헛된 놈일 뿐이다.

  이런 말투는 좀 그렇지만, 나는 떠밀려가는 체질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세계의 큰 변화에 따르고. 그저 떠밀려버릴 뿐인 존재.

  그 흐름을 거스르고, 자신만의 의지를 관철하는, 세계 본연의 모습을 바꿔버리는 영웅이나 주인공이라 불리우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나는 결국 그 이야기를 꾸며주기 위한 그저 엑스트라라고 하는 것으로.

  그러나, 세계의 흐름을 바꾸는 것도 못하는데도, 에너지만 소모하고 있다.

  그러니까, 완전히 엑스트라가 되는 것도 못하고, 무대의 가장자리에서 그저 얼쩡거리기만 할 뿐인, 매우 어중간한 존재.

  최대한 파고들어도 어중간하기만 하구나.


  그렇지만, 어중간하기는 해도, 엑스트라이기는 해도, 나는 나로서 여기에 있다.

  여태 선택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분명 선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떠밀려가기만 할 뿐인 나이지만, 떠밀려가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D의 심부름꾼이지만, 시스템처럼 만들어진 존재는 아니다.

  나는, 나만의 의지를 가지고 여기에 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어주면 좋겠다.


  …뭐어, 술자리에서 뭐라고 말하든 기억은 못 할지도 모르지만.

  술은 아직 있다.

  조금 더 나의 넋두리에 어울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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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리에도 규리에 나름의 생각하는 바가 있었군요.

생각해보면 참 안쓰러운 녀석입니다. 용족이지만 인간의 행태를 배우고, 용족에게서 버려지는 것으로 떨어져나와, 사리엘을 구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해버린 거죠. D가 Devil의 D인지 뭔지는 몰라도. 하지만 세계의 흐름에는 개입할 수 없었고, 결국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어버린 것 같네요. 물론, 용족은 용족이고 프라이드 하나는 우수한만큼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본문에서 언급되는 '선택'이라는 것은 앞으로 이 별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지 선택한다는 문맥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사리엘은, 인류가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는 결말을 바랬지만 묶여있는 관계로 선택지가 없고 규리에에게 부탁하게 된 거죠. 더스틴은 인류의 최다생존만을 '선택해' 그것만을 위해 살아오고 있습니다. 더스틴은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분명 정신이 해지고 약해지는 일도 있겠지만, 규리에가 말했듯 엄청난 정신력으로 그걸 극복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규리에는, 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 D가 신은 웬만치 개입하지 말라고 언질을 주기도 했지만 본인 스스로 그럼에도 어느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D는 그렇게 말만 해놓고 조금 신경쓰다가 연락도 뚝 끊어버리고 신경따위 전혀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규리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D의 비위를 거스르게 될까봐 고작 한 마디에 묶여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버리고 만 것이죠.


그리고 '과거편'이 아니라 '과거 이야기'인 만큼 아리엘과 규리에가 각각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털어놓는 모양새인 것 같네요.

다음 편부터는 예고했던대로 바로 본편인 301로 넘어갑니다. 거미코쨩, 오랜만에 등장하게 되겠군요. 덧붙여 301화 소제목이 '반년동안이나 출연할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 악몽에 가위 눌렸다'네요. 어지간히 출연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번역 도우미)

持たねばな -> 가져야만 하고

[1] 충독(蟲毒) : 사전적인 의미는 벌레가 가진 독이라는 의미지만, 여기에서의 의미는 전갈, 뱀, 도마뱀, 두꺼비, 지네, 거미 등 여러 마리의 동물들을 한 상자에 죄다 집어넣고 동족상잔을 시켜서 가장 강한 독을 가진 한 마리만 살아남게 하고, 이 때 독을 품으면서 싸웠던 모든 동물들의 독이 최후의 생존자 한 놈에게 합쳐지게 되어 더더욱 강한 독을 만든다는 일본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충독인 모양입니다. D가 만든 시스템의 모양새와 잘 들어맞는 비유라고 할 수 있겠죠.

[2] 헤타레(ヘタレ) : 가타카나로 쓰는 일본의 속어입니다. '겁쟁이 놈' 정도로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거의 고유명사 가깝게 쓰이는 모양새라, 여기서는 따로 한글 번역 없이 헤타레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매 화 이렇게 주석을 달아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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